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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322

아름다운 노을에 깃들어/김선자 아름다운 노을에 깃들어 김선자 아름답다는 건 상대적이지 사소한 일로 우리는 입씨름을 했지 저 쪽 전화기가 부서지 듯 콰당 소리가 나고 이내 잠잠해지고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오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전화가 오는 거지 "나, 아까 화냈지?" "그래, 더운데 열 받지 말자" 몇 마디의 대화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말 애꿎은 전화기 노려보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 서로가 뱉어낸 말들이 채송화 꽃씨처럼 전화기에 박혀 질 수도 있다는 거지 아닐 수도 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은 거지 작은 것들 이라고 정녕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지 소소 소소 솟아나는 채송화꽃 까맣고 반짝이는 작은 씨알들을 본다는 것 못 볼 수도 있는 일이지 무심하다는 건 웅얼대는 소리보다 더 상대적인 친밀감이지 그때 그 시간에 마음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 .. 2024. 8. 7.
나복실 아지매/김선자 나복실 아지매 김선자 전등불에 담배불 붙이려한 덩둘한 사람 도째비 이야기는 신명이 났네 시난고난한 일생 늘 아팠으니 이웃의 홀대와 손가락질 차가운 눈길 서방도 자식도 다 빼앗겼네 오례쌀 찐쌀 메뚜기볶음 미꾸라지국 동치미 손방은 아니었네 아리잠작한 나복실 아지매 평생 떠나 본적 없는 산촌마을 방 두 칸 툇마루 정지 딸린 너와집에서 살아온 아지매 좀 보소 수상해지는 거동 멧새처럼 재잘재잘 지저귀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엄마 찾는 아기 젖 달라는 옹알이였네 연신 배실 배실 웃고 있는 저 사람 아지매요 지금 어드메 있능교 느즈막이 어매 젖이 그리도 먹고 싶나요 *덩둘하다 : 매우 둔하고 어리석다 *정지 : 부엌의 경상도 사투리 *아리잠작하다 : 키가 작고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도째비 : 도깨비의 경상.. 2024. 4. 15.
봄까치꽃/김선자 봄까치꽃 김선자 쑤욱쑥 흙 밀어 올리다가쏙 고개 내미는 쑥냉큼 올라와서 싱겁게 꽃 하나 피우고머쓱하니 앉아 있는 냉이돌나물 앙증스레 오돌오돌돋고 있는 봄날머위나물 의젓이 솟아나고매화나무 둥치아래매화향에 흠뻑 젖어 있는큰개불알꽃이 작은 눈 깜짝이며민망스레 쳐다본다누구보다 일찍 봄소식 전하는 너봄까치꽃이라 이름 바꾸어 부른다햇살 주저앉은 툇마루봄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러 가을인가흰 구름 동실 몽실 여름인가따스한 햇살 곱디고운 내님인가노곤히 취하다가어이쿠! 시샘바람 자발없이눈 모로 세우고어머니 가슴 휘젓는 못난 자식처럼한바탕 돌개바람 불어제낀다땅기운 터져 물씬 풍기는 흙냄새어찌 이리 좋아울렁이는 이 가슴어찌하면 좋아 2024. 4. 15.
바람 부는 출렁다리/김선자 바람 부는 출렁다리 김선자 푸르른 바다는 찰찰 넘치도록 짭쪼롬한 해초 내음이 날린다 바람 부는 출렁다리 곳곳에 노란 표지 팻말 위험! 들어가지 마세요 굼틀굼틀 구부리고 철썩철썩 두드리고 바다는 꼬리를 살살 흔든다 부채살주상절리 동백꽃 빨간색 너무 요염하다 산호보다 아픈 부채살에 묻어오는 바람 갈매기 날고 날개에 굳은 생채기 먼 곳에서 퍼덕인 얼굴이 붉다 삐죽삐죽 다리 뻗치고 꼬리 이어 오는 파도를 부친다 밀어 부친다 남실대는 바다에 정맥같은 숨결을 띄운다 2024. 3. 16.
거울/김선자 거울 김선자  거울 속에 한 여자가 있다 넌, 누구니? 물어 본다넌, 누구니? 목소리 낮추어 조용히 되묻는다 이리와, 오른  손으로 손짓해 본다이리와, 왼손으로 손짓한다 나이든 저 여자가 도대체 누구야 노려보는 내게더 이상하게 노려본다 거울 속 세상은 알 수가 없다요지경인가 보다내가 졌다 쳐드는 두손 따라졌다는 듯이 쳐드는 거울 속 두 손이 어디서 본 듯하다 오늘도 내일도 거울 속에는 한 여자가 내 앞에 서 있다거기는 세월이 머물러 있고구름이 떠 있고 바람이 불고어쩐지 낯이 익은 얼굴도 있다가만히 생각해 보면날이 갈 수록 점점 그리워지는 정든 얼굴이다 돌아서서 잊어버리기엔 너무 늦어 버린 거울 속 여자구절초 한 송이 머리에 꽂아 주고 싶다 2024. 2. 23.
눈이여 아프지 말자/김선자 눈이여 아프지 말자 김선자 골골이 내리는 눈이여 아프지 말자 앞도 못 보는 사람 앞에서 눈이여 펄펄 퍼부으며 아프지 말자 희거나 검거나 감은 눈 휘젓지 말고 희미한 모습 어른거리며 아프지 말자 산에도 들에도 내리는 눈이여 사방팔방 가고 깊은 곳 거침없이 내려내려 쌓이는 눈이여 눈구멍만한 구석에도 사뿐사뿐 얄랑거리는 눈이여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세월이 훔쳐간 그녀의 몸 너무 가벼워 눈꽃 한 송이도 무겁다하거든 거기선 내리던 눈 멈추자 눈이여 어제도 아프고 오늘도 아프고 내일은 훠이훠이 부디 멈추자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긴 줄 달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너 영영 어두운 밤이 되기전 눈이여 눈물겨운 눈이여 골짜기에서 설빙 되어 얼어 붙기 전 아프지 말자 부드럽게라도 아프지 말자 2024.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