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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1

감자 먹는 사람들/김선자

by 김선자 2023. 3. 20.

감자 먹는 사람들

 

김선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식탁 위에는 파랗게 싹이 난 허기가 꿈틀거린다

 

구부러진 호미자루에 다섯 손가락 매단다

부드러운 흙이 자리 비켜주면 고개 내밀던 감자

줄 당기는 선수들처럼

한 덩어리로 엉긴 채 허리 꼭 끌어안고

주렁주렁 올라온다

 

냄비 안에서 뜨겁게 몸 익힌 감자

폭신한 속살

으깨어지는 것 피하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것들이 서로 어깨 맞대고

공손하게 엉겨서 하루의 배고픔 잊는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뭉개진 마음 뼈속 가득 움켜 쥐는 사람들

투박한 입술 마른 혀 사이로 씹혀지는 감자

이어지는 줄기 생명의 밧줄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호의 손에서

잉태되어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

태양이 늘 그들에게 주저앉아 살찌우고 뼈 굵게 하고

소박한 삶 희미한 램프 밑에서 빛나게 한다

 

*고호(Vincent van Gogh, 1853 - 1890) : 네덜란드 화가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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