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먹는 사람들
김선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식탁 위에는 파랗게 싹이 난 허기가 꿈틀거린다
구부러진 호미자루에 다섯 손가락 매단다
부드러운 흙이 자리 비켜주면 고개 내밀던 감자
줄 당기는 선수들처럼
한 덩어리로 엉긴 채 허리 꼭 끌어안고
주렁주렁 올라온다
냄비 안에서 뜨겁게 몸 익힌 감자
폭신한 속살
으깨어지는 것 피하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것들이 서로 어깨 맞대고
공손하게 엉겨서 하루의 배고픔 잊는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뭉개진 마음 뼈속 가득 움켜 쥐는 사람들
투박한 입술 마른 혀 사이로 씹혀지는 감자
이어지는 줄기 생명의 밧줄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호의 손에서
잉태되어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
태양이 늘 그들에게 주저앉아 살찌우고 뼈 굵게 하고
소박한 삶 희미한 램프 밑에서 빛나게 한다
*고호(Vincent van Gogh, 1853 - 1890) : 네덜란드 화가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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