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어쩌랴
김선자
숨기고 싶은 어제 벗어 던지고
잎 다 떨어져 앙상한 네 곁에 있고 싶다
더디게 올지라도 봄은 수줍게 온다
바람이 초록을 메고 찾아 온다
배불러 입맛없음도 안락한 이부자리도
편안한 쉼도 감추고 싶어진다
이를 어쩌랴
신문지 한 장 이불처럼 펼치고
세상을 덮으며, 뒷걸음질 하며
지하도 바닥에 생을 의지한 사람들
비비꼬이던 나날들 베틀에 얹어 놓고
날줄 씨줄로 엮어내지도 못한
메마른 마음이 떨고 있다
이를 어쩌랴, 나무야
벗고 벗어서 온 생애를 허물 벗듯이
껍질 채 벗어던진
나무, 너를 본다
바닥의 차가움이 얼음처럼 나를 덮쳐도
나의 죄 아님을, 다만 잠깐이라도
부끄러워했음을, 어쩌랴
나무야, 벗은 나무야
나의 미련한 사랑의 게으름이
뜨겁게 가슴을 누른다
걸음을 멈춘 사랑의 행보
다가가지도 뒤돌아서지도 못하는
어쩌랴, 사랑아 길을 묻고 싶다
나무야,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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