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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3

이를 어쩌랴/김선자

by 김선자 2024. 3. 16.

이를 어쩌랴

 

 

김선자

 

 

숨기고 싶은 어제 벗어 던지고

잎 다 떨어져 앙상한 네 곁에 있고 싶다

더디게 올지라도 봄은 수줍게 온다

바람이 초록을 메고 찾아 온다

배불러 입맛없음도 안락한 이부자리도

편안한 쉼도 감추고 싶어진다

이를 어쩌랴

신문지 한 장 이불처럼 펼치고

세상을 덮으며, 뒷걸음질 하며

지하도 바닥에 생을 의지한 사람들

비비꼬이던 나날들 베틀에 얹어 놓고

날줄 씨줄로 엮어내지도 못한

메마른 마음이 떨고 있다

이를 어쩌랴, 나무야

벗고 벗어서 온 생애를 허물 벗듯이

껍질 채 벗어던진

나무, 너를 본다

바닥의 차가움이 얼음처럼 나를 덮쳐도

나의 죄 아님을, 다만 잠깐이라도

부끄러워했음을, 어쩌랴

나무야, 벗은 나무야

나의 미련한 사랑의 게으름이

뜨겁게 가슴을 누른다

걸음을 멈춘 사랑의 행보

다가가지도 뒤돌아서지도 못하는

어쩌랴, 사랑아 길을 묻고 싶다

나무야,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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