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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의 시 156

탄생/김선자 탄생 ㅡ바늘 敍事 ‧ 26 김선자 쓸쓸한 곳에 사는 너는 예부터 즐겨 입던 삼베 모시 광목 옥양목 양지쪽에 펴 놓고 흰 옷 바라기 눈부셔 하누나 삼신 할망 손 분주하더니 연한 꽃잎 찢고 너를 끄집어 내었도다 땅 김 오를 적 생겨난 너 복사꽃나무 밑에 오롯이 앉아 설문대 할망 거섬을 만들 적 생각하누나 할망 너를 안고 장대 같이 쏟아지는 오줌을 참지 못해 우도를 만들고 유채꽃 노랑향기 들이 마실 적 두 다리 나란히 이곳에 뻗고 거섬에서 홀로 머리 베고 누웠다가 땅을 짚고 일어서누나 삼신 할망 우뚝 서서 바다를 호령하누나 눈물로 바닷물 넘치게 하지 마라 동백꽃 똑 떨어질 적 할망 뜨거운 죽에 빠져 죽어버려 다시 살아나올 적 따오기 울음 울어 울었도다 할망 손에 기댄 채 너는 몇 만 년 동굴로 들어가려하누나 .. 2023. 4. 15.
봄날/김선자 봄날 김선자 소소리 바람 맨망해도 뿌린 씨앗들 봄날이면 실팍한 새순으로 돋아 나오리 넌출 대다가 엉기기도 하다가 노고지리 우짖고 온갖 벌레 곰실대는 밭두렁 만들리 흙 묻은 발 툭툭 털며 씨앗 바구니 토방에 던지고 봉지 안에 남은 작은 씨 한 알 남새밭 추진 흙에 묻어 주고 다둑거리리 슴벅이는 햇살 주춤거리는 봄기운 등허리 가득 업혀오는 생의 숨결 추레한 작은 씨앗 외진 곳에서 푼더분하게 살고 싶어 하지나 않았는지 바장이던 발걸음 쟁여놓고 는개 내리면 가만가만 비설거지나 하면서 투미한 하루하루 우련한 달빛처럼 마주하련만 곰비임비 피어나는 꽃 방싯거리며 연두에서 초록으로 굽이치는 봄날 매서운 바람 자국 해거름에 흘리는 흥건한 내 눈물 ==================================== *소소리.. 2023. 3. 25.
새벽/김선자 새벽 ㅡ가족사 ‧ 1 김선자 봄동 나물 매만지며 오고 간 눈짓들 따스했다 거칠어진 손 두부모에 맡기고 사람들은 서로 부딪치며 종다리마냥 조잘거렸다 빨강은 빨강대로 파랑은 파랑대로 거리는 색들로 자욱해서 지붕마다 고기 굽는 냄새 새털구름 되어 흩어지고 떠나지 못한 허기 고사리처럼 몸 오그리고 씀바귀 냉이 갓나물 꼬리머위 미나리아제 불러 모은다 거리는 왕성하던 하루의 식욕을 닫아걸고 까막까치 날아간 저녁 어깨를 감싸 안는다 개밥바라기 서편에 기울 무렵 푸르고 시린 별 하나 곤두박질치고 저녁은 청설모 달아난 나무 우듬지로 별에 업혀 거리를 누빈다 저 먼데서 새벽이 종긋 거리며 다가온다 아우성치는 내일 위해 베갯모에 십자수라도 놓을려 하는가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2023. 3. 25.
도시의 겨울/김선자 도시의 겨울 김선자 사랑 때문에 마음이 시리다고굳이 말해야 하는차가운 바람이 옷깃에 파고든다희끗희끗 녹지 않은 눈들뽀드득거리며 귀속 말 하는 듯그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외로워보인다땅 위에 퍼지는 따사로운 햇살만지작거리며얼어붙은 흰 눈 위를 걸어간다새떼들의 날개 짓 같이사쁜사쁜 걷는 발걸음아차차 얼음 위에서 미끄러져 버린다비틀거리며 일어선다외투 깃 세우고 걸어 간다우렁껍질도 눈발자국도 찾을 수 없는메마른 도시다 쓸쓸하여라아스팔트 밑으로 情이라고 갈겨 쓴 글자가흔들리며 내려간다잊혀져가는 사람의 얼굴 위로녹아내리며 아래로 흘러내린다지저분하다 정이 끈끈하다고개뿔이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2023. 3. 25.
따스한 산/김선자 따스한 산 김선자 그 산에 가보고 싶다 늘 그 자리에서 날 반겨 주던 산 말없이 빙그레 웃음으로 맞아 주던 산 그 산은 이제 오를 수 없는 너무 먼 곳에 있다 무릎이 아플 때마다 그 산은 점점 더 희미해져서 그 산에 가고 싶은 마음 꾹 누른다 무릎에 파스 바르고 통증 갈아 앉힌다 무엇이든 생각대로 다 할 수 없다 그 산은 따뜻한 구들장에 밥그릇 묻어 놓던 겨울밤처럼 애틋하게 다가온다 김치 단지 마당에 묻어 두고 꺼내 먹던 그때를 보듬어 안고 산은 묵묵히 그 자리에 추억처럼 서 있다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날 반겨주던 산 언제나 가보고 싶었던 산 늘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산 냄새나는 파스는 이제 떼어 내고 당당히 두 발로 걸어 가고 싶다 ㅡ시집 《어머니의 바늘》, 시와시학, 2019. 2023. 3. 25.
1과 2/김선자 1과 2 김선자 1과 2는문 덜 닫고 나가는 딸애의 뒷모습사라지고 싶지 않은 연기처럼꼬리 감추기엔 마지막이 너무 길다얼마나 오랫동안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을까햇고사리 묻힌 흙 조심스레 다독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처럼아랫목이 생각나 몸이 저려온다폭신한 이불에 두 다리 묻고서로의 다리 문지르면꽁꽁 언 땅도 쌩쌩 부는 바람도겉옷이 필요 없었지낯선 사람의 발자국에 가시 곤두세우는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리다가가슴 부풀던 12월너와 나 손잡고 가지마다하얗게 핀 눈꽃 구경하던 12월1과 2는 늘 가슴과 가슴 맞대고 있는사랑의 사람들 같다고너와 따스해진 두 다리로 1과 2 만들었지언젠가는 떠나갈 너의 시린 어깨 부여잡고1월에게 자리 내어 주는 12월시원시원하고 개운하다고 너는 목청 돋우었지 딸아, 나가면서 문 좀 닫.. 2023. 3. 25.